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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제국주의의 조선침략 불평등 조약인 강화도 조약이후 일본은 조선에 대한 침략의도를 노골적으로 드러내 갑신정변과 청일전쟁, 러일전쟁에 승리하며 1905년에는 조선정부를 무력으로 협박하여 을사보호조약을 맺어 조선의 외교권을 빼앗고 통감부를 설치하였으며 헤이그밀사 사건을 빌미로 고종을 강제 퇴위시켰다. 1907년에는 정미 7조약을 맺어 조선의 전권을 장악하고 군대를 해산시키고 1910년 한일 합방이 이루어졌다. (사진은 명성황후가 살해당했던 경복궁 옥호루)
 
황민화 정책(1919- 해방까지) 1919년의 3.1운동을 분수령으로 소위 문화정치를 내세워 한반도의 완전한 일본화를 추진하였다. 그러나 헌병통치가 경찰통치로 바뀌었을 뿐 폭압적 지배체제는 오히려 내적으로 심화되었으며 교활한 민족 분열책을 써 일제와 타협하거나 독립운동의 시기상조를 내세우는 민족개량주의자들이 늘어났다. 일본은 많은 저항을 받았지만 이 저항의 과정에서 한국인들은 알게 모르게 차츰 일제에 오염되어갔다.
 
 
무단통치(1910- 1919 3.1만세운동) 일제는 최고 통치기구로서 조선총독부를 설치하고 입법, 사밥, 행정권과 군통수권을 장악하였다. 또 헌병경찰제도로 조선민중의 숨통을 죄었으며 철저히 무단탄압하였다. 일제는 1908년 동양척식회사를 설치하였고 1912년에는 토지조사령, 임야조사령, 삼림령을 공포하여 조선의 토지를 수탈하였다.
 
그들은 대부분의 농민을 소작농으로 전락시켜 일본경제를 위한 원료 조달 처와 시장으로 삼았다. 또 1912년에 제정된 조선민사령, 조선형사령등은 식민지통치법 이라는 이유로 일본헌법도 적용되지 않으며 조선인의 기본권조차 무시한 악법이었다. 심지어 학교교사까지도 제복, 제모, 일본도를 착용케 하는 헌병경찰에 의한 무단정치와 무력적 탄압은 항일의병에 대한 무자비한 토벌로 이어져 만주, 연해주 등지로 독립투쟁의 무대가 옮겨지게 되었다. (사진은 한일합방 당시 고위 관리를 지냈던 한국인 친일파 좌로부터 박제순, 이완용, 김윤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