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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발해를 우리 역사로 서술한 유득공(柳得恭)
작성자 우리역사바로알기    [ 112.144.118.72 ] 날짜 2013-06-16
이메일 hpy1017@naver.com 조회 7537
첨부파일1 발해를 우리 역사로 서술한 유득공(柳得恭).hwp
내용



“내 친구 유혜풍(유득공)은 박식하고 시를 잘 지으며 과거의 일도 상세히 알고 있으
므로, 이미 [이십일도회고시주]를 지어 우리나라의 볼 만한 것들을 자세히 밝혀 놓았
다. 더 나아가 [발해고]를 지어 발해의 인물, 군현, 왕의 계보, 연혁을 자세히 엮어
종합해 놓았으니, 그가 말하고자 하는 바는 고려가 고구려의 영토를 회복하지 못하였
음을 한탄한 것이다.”

- 1785년 박제가가 쓴 [발해고] 서문 중에서 -


백탑파 출신의 시인

유득공(柳得恭, 1748~1807)은 조선 후기 북학파 계열의 실학자로, 정조가 발탁한 네
명의 규장각 초대 검서관(奎章閣初代檢書官) 중의 한 사람이다. 자는 혜풍(惠風)ㆍ혜
보(惠甫), 호는 영재(冷齋)ㆍ영암(冷菴)ㆍ가상루(歌商樓)ㆍ고운당(古芸堂)ㆍ고운거사
(古芸居士)ㆍ은휘당(恩暉堂) 등 다양하다. 1748년 음력 11월 5일 부친인 유춘과 모친
인 남양 홍씨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난 유득공은 증조부 유삼익과 외조부 홍이석이
서자 출신이었던 탓에 신분상 서자로 살아야 했다.

유득공의 생애는 자세하지 않다. 일생을 기록해 놓은 행장이 아쉽게도 전하고 있지
않기 때문이다. 단편적이나마 전해지는 바에 따르면, 그의 나이 다섯 살 때 부친이
사망했다고 한다. 그때 부친인 유춘의 나이가 불과 27세에 지나지 않았다.

서자 출신으로 어린 나이에 부친마저 여의었으므로 유득공은 신분뿐만 아니라 경제적
인 면에서도 매우 어려운 처지였다. 일곱 살 때 모친을 따라 외가인 경기도 남양 백
곡으로 이주했다고 하는데, 아마도 형편이 어려워져서 일 것이다.

28살에 갑작스레 과부가 된 모친 홍씨는 맹모삼천지교(孟母三遷之敎)를 실천한 여성
이었다. 친정이 무반 집안이라 글공부를 할 분위기가 아니자, 그녀는 어려운 형편에
도 불구하고 아들의 공부를 위해 서울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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