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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인수대비(仁粹大妃)
작성자 우리역사바로알기    [ 112.144.118.72 ] 날짜 2013-07-18
이메일 hpy1017@naver.com 조회 10046
첨부파일1 인수대비.hwp
내용


인수대비(仁粹大妃)

소혜왕후(昭惠王后, 1437-1504)라는 시호 보다 인수대비(仁粹大妃)로 유명한 한씨는
실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다간 왕실여성이며, 여성 지식인이다. 조선 제9대왕 성종
의 어머니이자, 폭군으로 알려진 연산군의 할머니로서 더욱 유명한 인수대비는 시아
버지 세조가 왕위에 오르는 것을 몸소 지켜보았고, 남편의 죽음으로 잃어버렸던 왕
비 자리를 대신해 자신의 어린 둘째 아들을 왕으로 만들면서 대비 자리에 오른 입지
전적인 여성이다. 그러나 그녀가 [내훈(內訓)]이라는 여성 교육서를 만든 지식인이었
다는 사실은 그다지 알려져 있지 않다.



청주 한씨 가문의 딸로 태어나다
인수대비 한씨는 세조 때 좌의정을 지낸 서원부원군 한확(韓確, 1403~1456)의 6째 막
내딸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유교 교육을 받았고 정치적 영향력이 막강했던 청주 한
씨 가문에서 성장하였는데, 어머니 홍씨는 그녀의 나이 13살 되던 해에 세상을 떠났
다.

인수대비의 집안 배경은 그녀가 왕실과 혼인하게 된 결정적인 요인이었다. 그녀의 고
모 2명이 명나라 황실의 후궁이었던 것이다. 부친인 한확은 순창군수 한영정의 아들
로 그의 누이는 명나라 공녀로 갔다가 명 성조(成祖)의 후궁이 된 여비(麗妃)이다.
말하자면 인수대비 한씨의 큰고모가 명나라 황제의 후궁이 된 셈이다. 한영정의 맏딸
이었던 여비는 사대부가의 딸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불행히 공녀가 되었으나, 명 성조
의 눈에 들어 후궁까지 된 여성이다. 여비는 1424년 성조가 죽자 순절(殉節- 충절이
나 정절을 지키기 위하여 죽음)하였다고 전하는데, 실제로는 처형과 다름없는 자살이
었다. 그 뒤를 이어 황제에 오른 선종(宣宗) 또한 한영정의 막내딸 즉 한확의 누이동
생을 후궁으로 삼았다. [세종실록]에 보면 당시 한확이 재산이 많음에도 불구하고 미
모가 뛰어난 여동생을 시집보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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