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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6진 개척을 주도한... 김종서
작성자 우리역사바로알기    [ 112.144.118.72 ] 날짜 2013-07-28
이메일 hpy1017@naver.com 조회 10170
첨부파일1 6진 개척을 주도한 김종서.hwp
내용


김종서(金宗瑞, 1383~1453)는 세종 때 6진 개척을 주도한 인물로, 그리고 계유정난
때 수양대군 세력에 의해서 살해된 인물로 잘 알려졌다. 그러나 그는 300여 년이 지
난 영조 대에 복권되면서 충의의 상징으로 우리에게 각인되고 있다.



16세 문과에 급제하였으며, 자신의 재주를 자부한 신동

현재 우리는 ‘김종서’ 하면 6진 개척을 떠올리고 그를 무신으로 알고 있다. 사실
그의 부친이 무과 출신이었으니 그의 집안으로만 본다면 틀린 말도 아니다. 그러나
김종서는 문과를 통해서 관직에 진출한 엄연한 문신이었다. 더욱 그는 조선조에서도
드물게 이직(李稷)과 함께 16세에 과거에 급제한 뛰어난 능력의 소유자였다. 우리가
잘 아는 정인지가 19세에, 이덕형이 20세에 급제한 것과 비교해도 상당히 빠른 시기
였다.

김종서는 자신의 능력에 대한 자부심이 대단했던 것 같다. 후일 정치적 입장을 달리
했던 신숙주는 김종서의 추천으로 한 때 그의 휘하에서 관직 생활을 한 적이 있었
다. 신숙주 역시 재기가 넘치는 인물이었다. 하루는 김종서가 두만강 일대의 개척과
관련한 조정의 논의가 자신과 다르자, 자신의 뜻을 전달하는 글을 국왕에게 올린 적
이 있었다. 김종서가 올린 글은 수만 자에 달했다고 하는데, 이때 김종서는 신숙주에
게 쓰게 하고 자신은 구술하였다.

그런데 글을 써 내려가는 신숙주의 품새가 마친 평소 자신이 지어 놓은 글과 같이 줄
줄 써내려 가면서도 하나도 틀린 글자가 없었다. 이에 김종서는 탄복하여, “나는 본
래부터 내 재주를 자부하고 있지만, 자네도 드물게 보는 큰 재주일세.”라며 감탄해
마지 않았다고 한다. 이렇게 서로의 재주를 알고 지내던 김종서와 신숙주, 그러나 그
들은 결국 계유정난 때 서로 반대의 정치적 방향에 서게 되었으니 역사의 무상함을
느끼게 한다.

6진을 개척한 용맹한 장수이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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